사랑은..

일기.. 2006/10/17 13:48

텔레비전을 통해 재해의 공포를 함께 목격한 커플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런 얘기를 나눴다.
" 혹시라도 지진이나 전쟁 같은 게 나서 서로 잃어버리게 되면,
상대방을 찾을 수 있는 특징 같은 걸 기억해둬야 하지 않을까? "
남자의 말에 여자는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 너는, 새끼발가락이 네 번째 발가락보다 길잖아. "
그러자 남자도 지지 않고 말했다.
" 너는, 굉장히 귀여운 뺨을 가졌어. "
그들은 그렇게 잘- 놀고있었다.
지진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서로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아직은 알지 못할 때였으니까.


이처럼 깜찍한 커플에게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기억력에 대한 그녀의 불만이었다.
기념일을 잊어버리는 건 예사였고,
약속을 하고서도 깜빡 잊고 잠만 자다가 크게 싸운 적도 몇 번,
심지어는 옛날 여자친구와의 추억과 그녀와의 추억을 혼동해
섬세한 그녀를 울린 적도 있었다.
그 둘이 헤어지게 됐을 때, 그녀는 마음에 맺힌 말을 그대로 했다.
" 1년만 지나도 넌 나, 하나도 기억 안 나겠다. 부러워, 그런 기억력을 가진 게. "
그 말은 틀린 것도 아니어서,
두 달쯤 지나자 술 마시고 거는 전화가 뚝 끊어져버렸고,
일 년도 채 되기 전에 그는 새로운 애인과 여기저기 출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추억의 장소, 추억의 사물들을 조심스레 피해다니던 그녀로서는
그의 빠른 회복과 망각의 능력이 부럽고도 얄밉고도 서글프기만 했다.
그녀가 회복하는 데는, 그보다 3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결혼식에 그를 초대한 것은 일종의 객기였을 것이다.
나도 이만큼 회복됐으니, 한 번 와서 봐라- 라는 심정이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정말로 신부대기실 앞에 나타났다.
" 몰라보겠다. "
신부화장을 하고 앉아있는 그녀를 향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굉장히 귀여운 뺨이 아니었으면 진짜 못 알아볼 뻔했잖아. "



영화<아비정전>에서
남자는 여자와 함께 1분 동안 시계를 들여다본 뒤 이렇게 말한다.

" 난 이 일 분을 잊지 않을 거야. "

잊혀졌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member Me  (0) 2006/10/30
비가 온다  (0) 2006/10/27
새로운 시작  (0) 2006/10/25
눈을 감으면 눈물이 난다  (2) 2006/10/24
언제 부터인가  (0) 2006/10/20
사랑은..  (0) 2006/10/17
나는 울고 있었다  (0) 2006/10/16
"같이...." 여야.....할 텐데....  (0) 2006/10/10
나에게 던지는 고백  (0) 2006/10/08
우리는...  (0) 2006/09/30
...  (0) 200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