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가 연애하다가 심하게 싸우는 경우는 흔하지만, 그래도 그 싸움이 남자들끼리 화가나서 싸울때처럼 과격하게 가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여자가 남자보다 신체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전통적인 인식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여자를 때리는건 죄악처럼 여겨졌고, 여자에게 쌍욕을 해대는 남자는 몰지각하고 무식한 놈처럼 여겨진다. 여자는 작은 말에 상처받는 존재이고, 한대 맞으면 병원에 실려가는 힘없는 존재다. 한참 싸우다가 여자가 눈물이라도 흘리는 날이면 더 이상 남자는 그 싸움을 밀어붙이기 힘들기 마련이다. 고로, 남자는 참고 여자는 토라지는 것으로 싸움은 대개 마무리된다. 이런게 전통적인 남녀간의 싸움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이냐. 요즘 여자들 무섭다. 남자들보다(혹은 남자들만큼) 신체적으로 건강한 여자들 세상에 아주 많고, 남자들보다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건강하고 튼튼한 여자들 무진장 많다. 요즘에는 남녀가 싸우면 여자들 목소리가 더 클때가 많다. 심지어 여자한테 맞는 남자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그건 여자는 남자와 연애를 할때 반드시 약자의 포지셔닝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암묵적 관습이 이제는 많이 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장진영은 남자보다 드세고 호통하고 대범한 여자로 나온다. 욕도 무지 잘하고, 술도 무지 잘 마시고, 행동 하나하나가 보기에도 시원시원하다. 오히려 애인인 김승우가 상대적으로 여자처럼 보일 정도로 이 두사람의 역학관계는 역전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멜로 드라마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데이트코스를 이 영화는 따라가지 않는다. 영화내내 서로 욕하고 윽박지르고 머리끄댕이 잡고 테이크다운에 암바에 초크기술까지 써가면서 종합격투기를 하다가 결국 쓰러져서 떡을 치고 잠드는 그들은 거의 동물적인 커플이다. 장진영의 씨발씨발 거리는 대사를 질리도록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시원시원해서 좋기도 하고, 정신사나워서 피곤하기도 하다. 달콤하고 질질짜는 커플만 보다가 고성방가 커플을 구경하는 것은 분명 새로운 맛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태클이 있다. 그것은 극중 장진영의 직업이 술집 호스테스라는 것이다. 영화 보고나오는데 어떤 여자관객이 '아니.. 술집에서 일하는게 죄야? 그게 뭐가 문제가 돼!!! '라고 짜증내는 소리를 들었는데, 물론 술집 여자라는게 당연히 죄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술집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다보면 현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대다수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 술집여자와 결혼한다고 하면 찬성할 사람 없을 것이고, 자신의 친구가 결혼할 여자라면서 술집여자를 데리고오면 편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술집여자와 연애하는 일은 많을지 모르겠는데, 결혼까지 가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런 아이러니에 관한 영화다. 아니 그건 술집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재벌 2세들이 결혼 상대자를 구할때는 엄청나게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결혼한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드라마 속에서는 항상 재벌 2세들은 가난하고 평범한 서민가정의 여자와 우연히 만나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 사회에서는 거의 없는 일인데도 우리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 영화에서 김승우는 재벌2세도 아니고 부잣집 아들도 아니고 잘난 것 하나 없는 놈팽이인데도, 그런데도 결혼할 여자의 과거와 직업을 따지고 냉정한 결정을 내린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영화는 비극적이다. 연애는 가볍지만 결혼은 참으로 무겁거든.
이 영화는 배우로 알려진 김해곤의 감독 데뷰작이다. 중간에 제작비 조달이 안돼서 엎어질뻔한 결정적인 위기가 몇번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끝까지 촬영을 끌고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여주인공 장진영 때문이라고 하더라. 거친 욕 내뱉으며 온몸을 던져서 이미지 신경안쓰고 연기를 했는데 이 영화가 엎어질 경우 장진영이 받을 충격이 대단할거라는 걱정때문에 촬영을 중단할 수 없었단다. 김승우도 만족스런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이 영화는 누가봐도 장진영의 영화다. '청연'의 흥행실패를 화풀이라도 하듯이 이 영화에서 거의 신들린듯한 명연기를 보여준다. 배우출신 감독의 영화라서 그런지 몰라도 친분으로 불러 모은듯한 감초성 조연배우들이 무대기로 등장한다. 어떻게 저 많은 배우들을 죄다 불러모았을까 놀랄정도로 많이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역할의 비중이 작아서 그런지 연기를 발로하는 느낌이 있더라. 특히 요즘 잘나가는 오달수와 탁재훈은 아마 별다른 연습없이 촬영 직전에 대본받아서 즉석으로 연기한 것이 너무 티난다(특히 오달수는 그냥 국어책을 읽는다). 지나치게 욕설과 음담패설이 많이 나오고 술집문화, 유흥문화의 퇴폐적인 모습들이 자주 나오니까, 칙칙하고 지저분한 2류 인생들의 삶에 거부감 느끼는 분들은 피하시길 바란다. 참고로 김해곤은 '파이란'의 시나리오 작가다. '파이란'의 느낌을 좋아해서 송해성 감독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개봉을 기다리시는 분들은 그 영화보다는 이 영화 '연애참'이 훨씬 '파이란'의 분위기에 가까운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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